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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인간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찬미한 시대였다. 그 중심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있었다. EBS 강연은 이 두 천재의 삶과 작품, 그리고 피렌체에서 펼쳐진 세기의 대결을 조명하며 그들의 예술이 현대에 남긴 메시지를 탐구한다.

 


다빈치: 다방면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화가, 과학자, 공학자, 건축가를 겸한 ‘다중 천재’였다. 빈치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정식 교육 없이도 비범한 재능을 드러냈다. 10대에 피렌체의 베로키오 공방에서 수련하며 예술적 기초를 닦았다. 그의 초기작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천사를 그렸는데, 스승 베로키오를 능가하는 디테일과 빛의 표현으로 충격을 주었다. 성모 마리아에게 전하는 소식은 원근법과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을 보여준다. 백합 꽃, 천사의 날개는 실제 관찰에서 비롯된 사실성으로 빛난다.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수도원 식당의 벽화다. 원근법과 공기 원근법(스푸마토 기법)을 활용해 공간감과 감정적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예수의 배신 선언에 놀란 제자들의 표정과 몸짓은 생동감 넘친다. 모나리자는 스푸마토 기법의 정점으로, 부드러운 윤곽선과 신비한 미소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1911년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이 작품은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다빈치가 프랑스에 가져간 유산이다. 그의 수첩엔 무기, 비행체, 해부학 스케치가 가득해 다방면의 호기심을 증명한다.


미켈란젤로: 조각과 회화의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는 조각을 예술의 정점으로 여겼다. 피렌체 근교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반대에도 13세에 기를란다요 공방에서 수련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그리스·로마 예술을 공부하며 천재성을 키웠다. 20대 초반의 피에타는 대리석 한 덩어리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연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마리아 옷자락에 새긴 서명은 그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다윗은 피렌체의 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5m 거작이다. 다른 조각가들이 포기한 대리석을 완성하며, 싸움 직전의 긴장감과 비율 조정을 통해 완벽한 비례를 구현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브라만테의 계략으로 맡게 된 도전이었다. 4년간 물감과 디스크로 고통받으며 완성한 아담의 창조는 신과 인간의 손가락 사이 긴장감을 통해 신성함을 탐구했다. 60대에 그린 최후의 심판은 예수의 권위와 영혼의 운명을 강렬히 묘사하며, 자신의 얼굴을 벗겨진 가죽에 담아 고통을 표현했다.


세기의 대결: 피렌체 베키오 궁전

1504년, 피렌체 베키오 궁전 대회의실에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벽화로 맞붙었다. 공화국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는 스푸마토와 해부학적 정확성으로 신비로운 전투를,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는 근육과 역동성으로 에너지를 표현했다. 아쉽게도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루벤스와 바스티아로의 모사본으로만 남았다. 이 대결은 두 천재의 개성을 드러냈다. 다빈치는 빛과 부드러운 분위기, 미켈란젤로는 힘과 정교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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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천재의 유산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으로,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신성과 고통을 조각과 회화로 탐구했다. 그들의 작품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을 증명한다. 모나리자의 6400억 원 경매가(살바토르 문디), 다윗의 상징성은 오늘날에도 생생하다. 강연은 이들의 삶을 통해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풍부한 색을 칠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당신의 창의성은 어떤 색으로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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